명명법을 통해서는 지배층에만 관심 갖는 현재 역사 교육을 살펴보고자 한다. 특정시대의 사회 문화와 생활 모습을 알아내는 것은 다양한 방법과 관점이 있지만, 명명법을 통해 당시 사회의 모습을 알 수 있다는 ‘한뼘 한국사’의 관점은 신선하다. 양반은 아명, 관명, 호 등 나이와 격식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특정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큰 실례였으나, 노비는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그 이름도 양반의 편의에 따라 물건·가축·속어에 빗대어 지었다. 여성도 남성에 비해 매우 차별받았다는 것을 이름에서 알 수 있는데, 여성이 과년이 차면 아무개의 딸, 아무개의 누이로 불렸으며 부인은 남편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조선시대 사고방식에 따라 시집가면 여성의 이름은 없어지고 출가한 고을 이름으로 불리거나 ‘아무개(남편의 성)댁’이라고만 불린다. 조선시대 기록 중에서 여성의 이름이 직접 쓰이는 상황은 비장한 상황에서 절개를 굳게 지켜 후세에 모범이 됐을 때 행실도에 이름이 실리는 경우와, 역모에 연좌되었을 때 기록에서 그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극히 제한적인 두 가지 경우밖에 없었다고 하니 극심한 남녀차별을 이름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즉, 조선시대는 여성과 노비의 만연한 차별은 명명법에서 짙게 들어나며, 각자 자신의 정도를 지킬 것을 강조하는 신분제 사회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국사교과서에서 이런 호칭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는가? 여성과 노비의 차별에 대해서는 부끄러운 역사이며 ‘낮은 곳’의 존재이기 때문에 큰 관심이 없고 조선시대 당파 싸움과 왕의 업적, 즉 지배층의 역사만 배우고 역사를 잘 안다고 착각한 것이다. 승리자 위주의 해석과 지배층에만 관심 갖는 역사 교육은 오늘날의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명명법과 관해서 현재 신분제는 갑오개혁 이후로 폐지되어 현재에는 남아있지 않으나, 남녀 간의 차별은 여전히 남아있다. 비록 언론에서나 정부에서는 호주제를 폐지했고 남녀차별이 없다고 주장하나 실제 생활 속 많은 곳에서 남녀차별을 발견할 수 있다. 취업에서 여성들은 불이익을 받으며 조선시대에서부터 내려오는 제사에서 여성은 소외되고, 장례 문화에서도 남성과 여성의 복장부터 다르고 상주는 무조건 남자가 맡는다. 이름에서도 남녀차별을 발견할 수 있는데 현대에서는 조선시대와 달리 누구나 서로 이름을 부르나 아직 성은 부계중심으로 따라가며 모계 성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혼인증명서에 미리 체크를 해야 한다. 만약 체크를 안했을 경우에는 이혼하고 재혼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모계 성으로 따라가는 제도도 전무한 상황이다. 또한, 주변에서도 어머님들이 서로를 ‘ㅇㅇ(자식이름) 엄마’라고 부르는 관습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조선시대 명명법에서 남녀차별이 들어나는 것처럼 오늘날에도 올바른 명명법과 부계로만 전승되는 성(Family name) 관념 변화가 남녀평등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낮은 곳’에 위치했던 사람들, 국가 경계 밖의 사람들에 대한 연구가 오늘날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원동력과 경험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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